손님을 태우기위해 도로에서 갑자기 정차한 택시를 추돌할 뻔 하거나, 골목길에서 일반 도로로 합류할 때 길가에 주정차 해둔 대형차 때문에 시야 확보가 안돼 사고가 날 뻔한 경험은 운전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일이다. 한밤 중에 가로등도 없는 길에서 비상등도 켜지 않은 채 서있는 차에 가까이 갔다가 간신히 발견해 피하며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있을 것이다.

가까스로 사고를 피했다면 다행이지만, 어쩔 수 없이 불법주정차 된 차량 때문에 사고가 날 경우도 있다. 보통 자동차 사고라면, 차량 간 충돌 시 서 있던 차는 과실이 없고 움직이던 차가 100% 과실에 대한 책임을 진다. 그렇다면 불법주정차 차량도 일단 서 있었으니 아무 과실이 없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법주정차의 경우는 서 있던 상태지만, 과실 비율이 산정된다. 다만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불법주정차 차량이라 하더라도, 교통사고 발생 원인을 제공했다는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만 불법주정차한 차주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주로 주간에는 10%, 야간에는 20% 정도의 과실이 인정되지만, 상황에 따라 불법주정차 차량에 50% 이상의 책임이 지워질 때도 있다. 불법주정차 차량과 충돌하는 등의 직접적인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불법주정차 차량이 교통사고의 원인이 되었다면 과실 비율에 따른 책임이 발생한다.

먼저 어떤 경우가 불법 주정차에 해당되는 지 짚고 넘어가자. 도로교통법상 교차로, 횡단보도, 건널목, 보도를 주·정차의 필수적 금지 장소로 지정하고 있다. 교차로의 가장자리나 도로의 모퉁이로부터 5미터이내의 곳도 금지지역이다. 안전지대사방 10미터, 정류장 표시로부터 10미터, 건널목이나 횡단보도로부터 10미터 이내의 곳도 마찬가지다.

또한 주정차 시 뒤따르는 차량이 알 수 있도록 등화조치를 해야 하고, 다른 차량의 진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장시간 주차는 안전한 장소나 주차장 등에 주차를 하여 다른 차들의 교통과 안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고장이나 그 밖의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도 타인의 식별이 쉽도록 등화를 해야 한다.

등화만으로 어느 장소에서나 주정차를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불법주정차의 필수적 금지구역을 피해서 적절한 장소에 주정차를 할 경우에도 등화장치를 켜야 한다는 뜻이다.


불법주정차의 과실 비율은 정확히 정해진 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주간인지 야간인지, 사고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다 다른 비율이 산정된다. 여느 교통사고와 마찬가지로 과실 비율은 사고 당사자간 또는 보험사간의 합의에 의해 정해지는 편이지만, 합의가 되지 않으면 재판을 통해 과실 비율을 산정한다.

과실 비율 산정은 불법주정차된 차량의 차선 위치, 주정차금지구역 여부와 불법주정차된 차량의 왼편의 통행로 확보 상태와 등화상태 등 다양한 상황을 고려한다. 주정차된 곳이 다른 차량의 눈에 잘 띄는 지 여부도 중요하다. 또한 도로가 직선로인지 굴곡로인지, 가로등은 설치되어 있는 곳인지에 따라서도 과실 비율 산정이 달라질 수 있다. 또한 불법주정차 차량과 사고가 난 차량의 상태에 따라서도 과실 비율 산정이 달라진다. 예를들어 상대 차량의 음주나 무면허, 급차로 변경이나 전방 주시의무 불이행 등이 확인된다면 과실 비율은 줄어들게 된다.


사진 출처 : 전민일보
판례 1. 불법주정차 차량 과실 0%
2차로 도로에서 2차로를 따라 달리던 승용차가 우측 코너를 돌지 못한채 1차로로 이탈하면서 차체가 시계 방향으로 회전, 좌측으로 미끌어져 1차로 갓길 부근에 불법 주차되어 있던 트럭 적재함 부분에 좌측면 부분으로 충돌했다. 이 충격으로 승용차 운전자와 조수석 탑승자가 사망하고 뒷좌석 동승자가 상해를 입었다. 제한시속 60km인 편도 2차로 일방통행로에서 벌어진 사고로, 1차로의 노폭은 4.7m로 통행하기에 충분하고, 충돌지점보다 30m 이상 앞선 곳에서부터 요마크가 생성되었으며, 주차되어있던 트럭 사이에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은 없었다.

이 사건에서 트럭은 과실이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트럭이 야간에 미등 및 차폭등을 켜 놓지 아니한 채 주차금지장소인 이 사건 도로의 갓길에 주차한 사실은 인정되나, 정상적인 차량통행에 필요한 여유공간이 있고, 시야 확보에 어려움이 없었는 것을 근거로 트럭은 불법주차된 상태였지만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미디어전남
판례 2. 사고 원인을 제공하여 10% 과실 산정
편도 1차로 갓길에 불법 주차된 트럭 옆을 지나던 화물자동차 사이에 사람이 끼어 사망했다. 당시 트럭은 주차금지 구역인 편도 1차로의 2.6m 폭의 갓길에 건물쪽으로 차를 붙여 주차해둔 상태로, 트럭과 건물 사이로 보행이 불가능하여 도로의 황색 점선을 따라 사람이 걸어오던 상황이었다. 이를 혈중 알콜농도 0.266%의 술에 취한 화물자동차 운전자가 인지하지 못하고 트럭에 가까이 붙어 도로를 지나다가 보행자를 오른쪽 앞 범퍼와 후사경 부분으로 충격하여 주차된 트럭과 화물자동차 사이에 끼이게 한 것이다.

이 사건은 음주운전 상태인 화물자동차가 직접적으로 보행자와 충돌하면서 발생했지만, 트럭 역시 10%의 과실에 대한 책임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불법주차된 트럭이 보행로를 막아 안전한 보행이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에 보행자의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판례 3. 상대가 음주 운전자여도
불법주정차 차량 과실 산정 20%
혈중 알콜농도 0.243%의 만취상태에서 오토바이를 운전하다 불법주차된 화물차를 들이받아 오토바이 운전자가 사망했다. 사고 당시는 일출 전으로 어두운 상태였으며, 불법주차된 화물차는 흙먼지 등으로 뒤덮여 먼거리에서 식별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3차로에 주차되어 있었다.

재판부는 새벽녘 흙먼지에 덮여 미등·차폭등·비상등이 식별되지 않는 화물차를 차도 가장자리에 주차시킨 운전자는 이 차를 보지 못하고 들이받아 일어난 교통사고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특히 받은 차량의 운전자가 만취상태였다고 해도 화물차의 책임이 면제되지는 않고 20%의 과실 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경우다.

사진 출처 : tbsTV
판례 4. 불법주정차 과실 50%
택시는 편도 2차선 곡선 도로를 시속 46~58km의 속도로 1차선으로 주행하다가 2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한 후 2차선에 불법 주차 돼 있던 트럭의 뒷부분에 추돌했다. 차량 조수석에 앉아 있던 승객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택시가 가입돼 있는 전국택시 운송사업조합 연합회는 승객에게 치료비와 합의금을 지급하고 트럭이 가입한 KB손해보험을 상대로 손해보험협회 산하 구상금 분쟁심의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 위원회는 트럭 운전자에게 15%의 책임만 물었다. 연합회는 조정에 불복해 구상금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대형트럭이 주차금지 구역인 도로 2차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점, 사고 현장이 차량들의 빈번한 차선 변경이 예상되는 지점이었던 점, 트럭이 후미등을 켜놓는 등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을 들어 트럭에 절반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야간에 불법 주차된 트럭으로 인해 택시기사가 트럭을 발견하지 못해 추돌 사고가 발생하게 된 것으로 보고 트럭에게 50%의 과실을 물었다.


위의 여러 사례와 같이 상대 운전자가 음주 상태라 하더라도 불법주정차 차량의 과실이 산정될 정도로 명백히 불법주정차가 원인이 되어 사고가 발생하는 일이 많다. 불법주정차로 인한 사고가 끊이지 않고, 그로 인해 불법주정차를 한 차량 역시 책임을 져야 하는 등의 손해가 발생하는데도 불법주정차가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지어 현대해상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불법주정차로 인해 발생한 사고가 연평균 22.8%씩 꾸준히 증가했다.

공엽지역의 경우 화물차 수가 많고 주거지역 주차장 확보율이 낮을수록 불법주정차로 인한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특히 공업지역의 경우 건설기계나 화물, 특수차와 연관된 사고가 많다. 특히 공업지역은 20-24시에 불법주정차로 인한 사고가 집중되어있으며, 야간 사고 비율도 더 높다. 공업지역 내부 주차장 확보율이 낮아 야간 주거지역 이면도로에 주차하는 일이 늘기 때문이다.

상업 및 업무지역의 경우 주차장 확보율이 낮거나 교차로 수가 많아질 수록 불법주정차로 인한 사고가 늘어난다. 주차장 확보가 잘 되어 있는 경우이더라도, 주차 요금이 높을 수록 이면도로에 주차하는 경향이 강해 사고가 많이 발생했다. 다른 차의 통행 방해로 인한 교통 정체 유발을 비롯해 주정차 차량을 피해 차선을 변경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사고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주차비를 내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한 이기적인 선택이다.

주차 장소가 부족한 경우는 개인의 노력으로 개선이 어렵지만, 단지 주차비를 안 내거나 혹은 목적지 가까운 곳에 차를 주차하려는 등 이기적인 목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특히 주정차 지역이 아닌 곳에 부득이하게 주정차를 해야 한다면, 다른 차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는 하면서 주정차를 하자. 다른 차량의 시야를 가리지 않는 곳,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 곳에 주정차하고, 다른 차가 주정차 중인 차를 잘 알아볼 수 있도록 주간 야간 모두 등화장치를 꼭 켜놓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