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모빌코리아=뉴스팀] 국민차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 많이 팔리는 차를 국민차라고 생각한다. 자동차 구입과 유지비용이 낮은 차를 국민차로 생각하는 사람도 일부 있다.

독일에서는 비틀과 골프가 오랜 기간 국민차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미국은 F-150와 같은 픽업트럭이 국민차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동차 역사가 비교적 짧지만 시대별로 가장 많이 팔렸던 국민차가 하나씩 존재했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국민차의 변천사에 대해 알아보자.


1970년대
포니, 브리사

먼 옛날에는 차가 운송수단이 아닌 부유층을 상징하는 사치품이었다. 지금처럼 아무나 차를 꿈꿀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고, 출시된 자동차도 많지 않았지만 그 시대를 상징하던 자동차들은 남아있다.

1974년, 기아산업에서 마쓰다 파밀리아 2세대의 차체와 엔진을 바탕으로 개량하여 ‘브리사’를 출시하게 된다. 당시 국내 자동차 시장이 막 형성될 시기였기 때문에 출시 첫해 전체 승용차 시장 판매량의 58.4%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출시 당시 249만 원이었고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2,500만 원 정도 되었다고 한다. 1970년대 라면 1개 가격이 20원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자동차라는 것이 그 당시 부의 상징이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다.

한창 인기를 끌던 브리사 앞에 막강한 경쟁 모델이 등장했다. 1975년 12월, 현대자동차 첫 독자 생산 모델인 ‘포니’가 출시된 것이다. 브리사와 달리 포니는 4도어 패스트 백 세단과 3도어, 5도어 해치백으로 출시되었다. 출시 이듬해 1만 대를 판매했으며 국내 자동차 전체 판매량 중 40%를 차지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판매 가격도 228만 9,200원으로 브리사보다 저렴했던 것도 인기 비결이었다.

국민차 지위를 위협받던 브리사는 파밀리아 중 가장 크기가 큰 그랜드 파밀리아를 베이스로 ‘브리사 2’를 1977년에 출시했고 이듬해 왜건 모델인 ‘K-303’을 출시했다. 엔진 배기량도 1.0리터에서 1.3리터로 변경해 포니와 동등한 성능을 내세웠다. 포니와 브리사 모두 국산화율이 80%를 넘었다. 이 두 모델 덕분에 현대자동차와 기아산업은 자동차 기술 개발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고, 앞으로도 많은 차들을 출시할 수 있는 근간이 되었다.

1980년대
엑셀(프레스토), 르망

1981년,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로 인해 기아자동차는 1~5톤 트럭 및 소형 버스를 전문적으로 생산하게 되어 브리사가 단종되었다. 반면 이 조치로 승용차 생산을 담당하는 현대자동차와 새한자동차는 각각 ‘엑셀’과 ‘르망’이라는 새로운 소형차를 출시했다. 엑셀은 1985년 해치백이었던 포니의 후속작으로 나온 모델이며 포니를 능가한다는 의미로 처음에는 ‘포니엑셀’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반년 뒤 세단 모델을 출시했는데 ‘프레스토’라는 별도 이름을 붙이게 된다. 1986년에는 해치백 모델명을 포니엑셀에서 엑셀로 변경했다.

1980년 후반에는 3저 호황에 힘입어 국내 역사상 최고의 성장률을 보이던 시기였고 이를 바탕으로 마이카 붐이 일어나 1세대 엑셀과 프레스토가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세단 모델인 프레스토 인기가 상당했고, 자신감을 얻은 현대자동차는 미국에 엑셀과 프레스토를 수출해 점점 성장하게 된다.

반면 레코드와 로얄 살롱 등 고급차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새한자동차는 1983년 대우자동차로 상호를 변경하고 1986년, 소형 승용차인 ‘르망’을 출시했다. 오펠이 개발하고 대우자동차가 생산했으며 폰티악이 판매한 월드 카다.

르망은 4도어 세단 기준으로 485만 원부터 시작했으며 부족하지 않은 동력 성능, 실용성으로 데뷔 첫해 1만 6,000대를 판매했으며 이듬해 1987년에는 4만 2,000대가 판매되면서 프레스토 판매량의 거의 따라잡아 국민차 반열에 오르게 된다. 3도어 해치백인 르망 레이서는 4,100대를 판매해 포니엑셀 3도어보다 8배 더 많이 팔았다. 르망은 오랜기간 생산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1986년부터 1997년까지 11년간 무려 105만 대를 생산했다.

1990년대
쏘나타, 아반떼

1990년대는 패밀리카의 개념이 형성되던 시기였다. 이때에는 가족들과 함께 타기 편한 차들이 인기를 끌었다. 70년대와 80년대에 소형차가 인기 있었다면 90년대에는 중형차가 인기를 끌었다.

현재 국민 중형차로 꼽히는 ‘쏘나타’도 이 시기부터 국민차로 등극하기 시작했다. 쏘나타는 1985년에 처음 나왔지만 지금 이미지와 달리 고급차에 속했었다. 가격도 2.0리터 자동변속기 사양이 1,298만 원으로 대우자동차의 플래그십 모델 로얄 살롱보다 작으면서도 더 비싸 판매량이 적었다.

1993년 3세대 모델인 ‘쏘나타 Ⅱ’가 출시되면서 본격적인 국민차 이미지를 갖기 시작했다. 곡선을 대거 도입한 익스테리어로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에어백, 전동 조절식 미러, ECS 시스템 등 당시에는 최첨단 사양이었던 옵션들을 대거 탑재한 덕분에 출시 후 3년간 60만 대를 달성하였다.

디자인에 대한 평가가 매우 좋아서 오늘날까지도 역대 쏘나타 시리즈 중 최고의 디자인으로 쏘나타 Ⅱ를 지목했을 정도였다. 또한 일반택시와 렌터카로도 많이 팔려 국민차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흔히 ‘구아방’이라고 불리는 ‘아반떼’도 크게 성공한 모델로 손꼽힌다. 1995년, 엘란트라의 후속 모델로 출시한 아반떼는 국산화율 99.9%로 현대 엑센트에 이어 두 번째 완전 국산화 모델이다. 우수한 성능과 넓은 실내공간, 안정된 주행감으로 당시 세피아와 에스페로가 경쟁하고 있는 준중형급 시장을 순식간에 장악했다.

고려청자를 모티브로 한 유려한 디자인, 부식이 거의 없고 고장이 적었던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받아 5년 동안 총 123만 대가 판매되었다. 특히 출시 25년이 지난 지금도 도로에서 아반떼를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품질이 좋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현대자동차 모델 중 최고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2000년대
쏘나타, SM520

2000년대에도 여전히 쏘나타가 강세였다. 2004년 출시된 ‘NF 쏘나타’는 자체 플랫폼을 적용한 첫 번째 쏘나타이며 그동안 사용했던 시리우스 엔진을 버리고 자체 개발한 세타 엔진을 적용한 기념비적인 모델이다.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으로 현대자동차 디자인 능력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국산차 중 패밀리룩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모델이다. 이듬해 나온 그랜저 TG가 쏘나타랑 유사한 디자인을 가지고 출시했다. NF 쏘나타는 매년 10만 대 이상 팔렸다.

이후 2009년에는 6세대 모델 ‘YF 쏘나타’가 출시되었다. 패밀리 세단에서 이런 파격적인 디자인을 갖고 있는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봐도 거의 없다. 그렇기에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충격을 가져왔다. 특히 일본 내에서는 ‘쏘나타 쇼크’라는 말이 종종 회자될 정도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파격적인 디자인은 쏘나타의 구매 연령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 그동안 쏘나타는 40대 중년을 구매 타깃으로 했으나 YF는 30대로 타깃을 내렸다. 또한 20대에게도 호평 받아 쏘나타를 첫차로 구매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디자인에 관해 호불호가가 갈렸지만 여전히 한 해에 10만 대가량 팔려 인기가 많았다.

1998년, 쏘나타를 위협할 새로운 강자가 나타났다. 바로 삼성자동차 ‘SM520’이다. 당시 막 자동차 시장에 뛰어든 삼성 자동차는 닛산과 기술 협력을 맺고 2세대 세피로(수출명은 맥시마)를 바탕으로 하여 디자인과 편의 사양을 수정해서 출시했다.

SM520은 삼성 자동차에서 만든 첫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정숙성과 주행감, EF 쏘나타에 뒤지지 않는 상품성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또한 부식에 강한 아연도금 강판과 신가교 도장을 적용해 차량 내구성을 크게 높였다. 그 결과 EF 쏘나타의 판매량을 무섭게 추격하며 국내 중형차 시장 2위로 뛰어올라 새로운 국민차로 등극하게 된다. SM520은 7년간 40만 대가 팔렸으며 고장이 거의 없어 지금도 도로에서 자주 볼 수 있다.

2010년대
그랜저, 싼타페

2011년, ‘그랜저 HG’가 출시되었다. 역대 그랜저 중 차체 크기 변화 폭이 가장 컸다. 동급 미국 세단 크기를 따라잡기 위해 전장 25mm, 휠베이스는 65mm를 키웠다. 그랜저보다 더 높은 급인 오피러스와 맞먹는 크기였다.

그랜저는 XG와 TG를 거치면서 부유층의 상징에서 대중적인 성격으로 자리 잡았지만 중년이 타는 차라는 이미지는 여전했다. HG는 플루이딕 스컬프처라는 젊은 디자인을 적용하면서 고객 평균 연령층이 많이 낮아졌다. 날렵한 눈매를 가진 헤드램프와 후면부 디자인으로 스포티한 분위기를 더했다. 젊어진 그랜저는 출시 첫해 10만 대를 시작으로 매년 8만 대씩 팔아 쏘나타의 판매량을 점점 위협하기 시작했다.

2016년, ‘그랜저 IG’가 출시되었다. 점점 타깃층이 젊어지고 있는 그랜저의 브랜드 지향점을 반영하여 HG보다도 더 젊어지고 스포티한 인상으로 변화했다. IG 출시 이후 국산차 시장에 큰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바로 쏘나타와 아반떼의 판매량을 넘어 가장 많이 팔리는 세단이 된 것이다. 2017년 10만 대 이상 팔아 국산차 판매 1위를 기록했고 2018년과 2019년에는 포터와 싼타페에 밀려 3위를 차지했지만 여전히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세단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했다.

가격대가 높은 준대형 세단이 판매량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희소한 사례다. 이에 대해서는 크게 3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 번째는 과거에 비해 소득 수준이 올라 그랜저를 넘보는 소비자가 늘었다. 물론 그랜저 가격은 여전히 비싼 편에 속하지만 과거에 비해 중산층이 많이 늘어났다.

두 번째는 그랜저의 브랜드 가치를 들 수 있다. 그랜저는 1986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30년 이상 쌓아왔다. 현재는 제네시스 G80, G90, 기아자동차 K9등 더 윗급의 차도 있지만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랜저를 대표적인 고급 세단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세 번째로 경쟁 모델의 약화를 들 수 있다. 임팔라는 올해 35대를 판매했을 만큼 판매량이 매우 낮고 SM7는 오랫동안 풀체인지가 없었기 때문에 상품성에서 그랜저에 밀린다. 그나마 K7이 그랜저의 대항마로 나서고 있으나 이제 막 10년이 지났기 때문에 브랜드 가치에서 밀린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랜저를 선택한다.

그랜저와 함께 판매량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차가 있다. 바로 SUV인 ‘싼타페’다. 2010년대 들어서 레저 활동이 늘어나고 세단 대신 SUV를 패밀리카로 선택하는 소비자가 많아졌다. 2010년 SUV 판매량은 전체의 23%였지만 2015년에는 전체 판매량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많이 늘었다.

2018년 출시한 4세대 싼타페는 전장이 4,770mm로 전작보다 커졌으며 능동 안전기술인 ADAS가 들어간다. 국산 SUV 최초로 윈드 실드 타입 HUD가 탑재되었으며 고속도로 주행 보조 시스템이 들어간다. 또한 세계 최초로 안전 하차 보조 기능과 후석 승객 알림 기능이 들어가 아이가 있는 부부에게 유용하다. 4세대 싼타페는 작년 9만 9,143대, 올해 상반기 4만 4,088대를 판매해 전체 판매량 2위를 차지하여 국민 SUV의 반열에 올랐다.


지금까지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시대별로 국민차를 알아보았다. 1970년과 1980년대에는 소형차가 중심을 이뤘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준중형과 중형차가, 2010년대에는 대형차와 SUV로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국민차가 바뀌었다.

앞으로 4달 후면 2010년대도 끝나가고 2020년대가 시작한다. 과연 2020년대에는 어떤 차가 국민차로 선정될까? 요즘 하이브리드나 전기차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친환경 자동차가 국민차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독자들이 생각하는 국민차는 무엇인가?

오토모빌코리아에서 작성된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복사, 재배포 등을 금합니다.
© 2019. 오토모빌 코리아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