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모빌코리아=뉴스팀] 대우자동차라는 브랜드를 기억하는가? 대우자동차는 의외로 역사가 깊은데 1955년, 부산에서 신진공업이 미군으로부터 불하 받은 폐차 섀시를 이용해 버스를 만들면서부터 시작했다. 이후 GMK, 새한자동차를 거쳐 대우자동차로 이어져 왔었다.

현재는 쉐보레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한때는 현대자동차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던 자동차 회사였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로얄 프린스는 당시 중년의 로망이었고 르망은 청년의 로망이었다.”라며 대우자동차를 그리워하고 있다.

특히 1992년에는 포르쉐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울리히 베츠가 기술고문으로 합류하면서 대우자동차의 기술이 크게 발전했다. 만약 대우그룹이 부도나지 않았다면 지금은 현대자동차를 뛰어넘었을 것이라는 네티즌의 의견도 종종 있었다. 훌륭한 차를 많이 남긴 대우자동차, 그중 일부만 정리해 보았다.


매그너스
강렬하면서 고급스러운 디자인

‘에스페로’는 1986년부터 1990년까지 4년간 자체 개발한 대우자동차 첫 고유모델이다. 중형차 시장에서 현대 쏘나타에 밀리던 대우자동차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으며 이탈리아의 디자인 스튜디오인 베르토네가 디자인을 맡았다. 당시 시대를 앞서갔다는 평을 들었을 정도로 세련된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으며 공기저항 계수가 0.29로 당시에 나온 국산차 중 가장 낮았다. 제네시스 BH가 등장하기 전까지 기록을 유지했다.

초기 에스페로에는 르망 이름셔와 동일한 2.0리터 CFI 엔진을 사용했다. 르망 이름셔와 달리 고성능을 표방한 차가 아니였기 때문에 엔진 성능은 100마력, 16.2kg.m로 디튠되었다. 연비는 13.5km/L을 기록했다.

1991년 프린스가 출시되었는데 둘 다 중형차로 분류되어 포지션이 겹쳤기 때문에 판매 부진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에 대우자동차는 에스페로에 1.5리터 100마력 DOHC 엔진을 탑재해 준중형급으로 등급을 조정하게 된다.

1991년 11월, 부분변경 모델이 출시되었다. 테일램프가 콤비네이션 타입으로 변경되었고, 시트의 재질 고급화, 앞 좌석 룸램프 시계 추가, CD Pack라는 고급 옵션이 추가되었으며 안전 사양으로 ABS가 추가되었다. 1997년 후속 모델인 누비라에게 바통을 넘기고 단종되었다. 단종될 때까지 수출 포함 총 52만 대가 팔렸다.

누비라
김우중 회장이 가장 애착을 보인 모델

‘누비라’는 에스페로의 후속으로 1997년 출시된 자동차다. 세계 시장을 타깃으로 개발한 전략 차종이다. 세계를 누비라는 뜻으로 누비라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자동차 업계에서 무쏘, 맵시와 함께 보기 드문 순우리말 이름이다.

당시 대우자동차에서는 라노스, 누비라, 레간자 3개 모델을 동시 개발하고 있었는데 김우중 회장이 가장 큰 애착을 보였던 모델이다. 당시 갓 준공된 대우자동차 군산공장에서 처음 생산된 자동차다.

디자인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디자인 업체 중 하나였던 ‘이데아’의 ‘프랑코 만테가차’가 담당했다. 대우 디자인포럼도 참여했지만 누구에게나 친숙한 차라는 콘셉트에 충실한 이데아의 디자인이 채택되었다.

누비라는 동급인 아반떼 J2, 세피아보다 큰 차체와 넓은 실내 공간을 자랑했다. 엔진은 1.5리터와 1.8리터 두 가지를 적용했으며 독일 ZF의 4단 변속기를 탑재했다.

1997년 6월에는 왜건 모델인 ‘누비라 스페건’이 출시되었다. 아반떼 투어링과 파크타운과 경쟁했지만 세단을 선호했던 국내 시장에서는 맞지 않아 판매량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세 모델 중에서는 제일 많이 팔렸으며 실제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잘 만든 왜건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1998년에는 5도어 해치백인 D5가 추가되었다. 일반적인 해치백 형태가 아닌 세단에서 뒷부분만 잘라낸 듯한 테라스 해치백 형태였다. D5 역시 판매량이 적었다. D5에는 1.5리터와 2.0리터 엔진을 탑재했다.

1999년에는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누비라 2’가 출시되었다. 성능과 효율을 모두 잡았다는 의미로 ‘파워노믹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쉬리츠의 휠을 적용해 고급스러움을 배가시켰다. 누비라 2에는 레간자에 적용된 NVH 기술을 대거 적용해 승차감을 높였고 기존 누비라보다 우수한 정숙성을 보여준다.

누비라 2에는 동급 최초로 프로젝션 헤드라이트와 글라스 안테나, 슈퍼비전 클러스터가 적용되었다. 특히 슈퍼비전 클러스터는 국내에서는 그랜저 XG에 처음 적용한 고급 사양 중 하나였는데 대우에서는 2등급이나 낮은 누비라에 적용되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누비라는 2002년까지 총 24만 3,567대를 판매하고 단종되었다.

레간자
소리 없이 강하다

레간자는 20여 년 만에 대우 로얄 시리즈의 후륜구동 플랫폼에서 벗어나 독자 개발한 전륜구동 중형 세단이다. 1997년 출시했으며 현대자동차와 국내 시장 점유율 격차를 많이 좁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레간자는 지금도 성공한 마케팅 사례 중 하나로 언급되는데 ‘소리 없이 강하다. 쉿! 레간자”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소비자에게 레간자를 각인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실제로 김우중 회장도 홍보 문구에 큰 흥미를 보이며 발표 내내 집중하며 적극적으로 질문을 쏟아 냈다고 한다.

레간자는 국내 중형 세단 최초로 5볼트 휠을 적용하여 주행 성능이 향상되었으며 ZF의 전자식 4단 자동변속기가 주행성 측면에서 호평을 받았다. 여기에 성공적인 마케팅 전략까지 합쳐 1997년 3월에서 7월까지 4개월 동안 월간 자동차 판매량 조사에서 쏘나타 3를 제치고 중형차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대우자동차는 그동안 고질적인 문제로 기어비를 항상 언급되어 왔는데 DOHC 모델은 클로즈 레이쇼 사양으로 기어비를 변경해 ‘대우차는 굼뜨다.’라는 인식을 불식시켰다. 당시 각종 잡지와 PC 통신 자동차 관련 게시판에는 대우자동차가 진짜 달라졌다!라는 호평이 많았다.

이외에도 뛰어난 공력성능으로 순정 모델들도 200km/h을 가뿐히 넘겼다. 실제로 2000년대 중반까지 고속도로 내 과속 차량 모델 리스트에도 레간자가 계속 올랐었을 만큼 차가 잘 나갔었다.

레간자에는 중형차 최초로 AQS 기능이 장착된 풀 오토 에어컨과 후석 선반 공기청정기를 적용했다. 이후 매그너스의 출시로 판매 간섭을 막기 위해 2000년부터는 1.8리터 엔진을 탑재했다. 이로 인해 가격도 기본형 기준으로 1,086만원으로 인하되어 당시 기아 옵티마와 함께 가장 저렴한 중형차로 기록되었다. 2002년 단종될 때까지 내수 17만 대, 해외 수출 16만대로 총 33만 대가 판매되었다.

매그너스
강렬하면서 고급스러운 디자인

‘매그너스’는 1999년 출시된 중형 세단이다. 출시 당시 빅 매그너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을 만큼 동세대 중형차 중에서는 가장 컸다. 아카디아 단종 후 스테이츠맨이 등장하기 전까지 플래그십 역할도 했다.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을 담당했으며 ‘강렬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디자인’이라는 콘셉트로 디자인되었다. 그 때문인지 레간자의 디자인 기조를 이어가면서도 직선의 멋을 살려낸 매그너스 디자인은 지금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튜닝 업계에서도 튜닝했을 때 가장 이쁜 차로 선정되기도 했다.

매그너스에는 국내 최초로 가로 배치식 직렬 6기통 엔진을 탑재했다. 덕분에 뛰어난 승차감 및 주행성능을 자랑했다. 이후 EF 쏘나타와 옵티마에도 6기통 모델이 출시되었지만 판매량이 거의 없었다. 반면에 매그너스는 6기통 모델이 주력이었다.

2000년에는 디자인을 약간 변경해 스포티한 이미지를 살린 ‘매그너스 이글’이 출시되었다. 특히 스모키한 테일 램프는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었다. 원래는 190마력을 발휘하는 엔진을 탑재한 고성능 트림을 출시하려고 했으나 불발되고 매그너스 이글이 출시되었다.

2002년에는 XK 엔진을 탑재한 L6 매그너스가 출시되었다. 고급 사양 기준으로 세로 줄무늬 크롬 라디에이터 그릴, 후드 탑 로고, 투톤 보디 컬러가 적용되었고, 2.5 클래식 사양에는 한정판 크롬 휠도 적용되었다.

매그너스는 안전한 차로도 소문났다. 출시 직후 신차 시승회 때 동호회를 초청하여 진행한 합동 시승식에서 한 회원이 코너를 돌다가 사고가 발생했다. 차가 전복될 만큼 큰 사고였지만 운전자는 다친 곳 없이 차에서 나왔다. 이 사건이 유명해지면서 매그너스가 안전한 차로 입소문이 났었다.

레조
유럽형 미니벤

‘레조’는 2000년에 출시된 유럽형 미니벤이다. 레조의 시작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우자동차와 피닌파리나와 공동으로 제작한 콘셉트카 ‘No.2’를 발표했는데 공개 당시 굉장히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당시 PC 통신 자동차 동호인들 사이에서 굉장한 화제가 되었으며 구동계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 큰 화제였다.

이후 1997년 ‘타쿠마’라는 콘셉트카를 서울 모터쇼에서 공개했고 1999년에는 타쿠마 스포츠 및 스타일 콘셉트를 공개했다. 이후 양산차 개발 과정에서 이데아도 레조 디자인을 제안했지만 파격적인 디자인이마음에 들었던 대우자동차는 피닌파리나의 디자인을 채택되었다.

원래 레조는 5인승으로 출시할 예정이었지만 국내에서 7인승 승용차는 일반인도 LPG 구입이 가능하다는 점을 노려 3열 시트를 장착해 7인승으로 출시했다. 또한 당시에는 승합차로 분류되 세금도 저렴했다는 장점이 있어 인기가 많았다. 캡 포워드 디자인으로 천장 공간이 넉넉하고 벨트라인이 낮아 창문이 넓어 시야가 넓은 장점이 있다.

유럽 전략형으로 만들어진 까닭에 유럽에서 반응이 좋았다. 특히 디자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매그너스와 레간자에 적용된 방음 기술을 적용해 경쟁 모델인 카렌스 대비 정숙한 MPV를 표방하여 2000년에는 6만 7,066대로 전체 판매량 5위를 차지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004년에는 수출형 모델이, 2005년에는 내수용 모델이 페이스리프트 되었다.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과 휠 디자인, 메탈릭 색상의 루프랙이 적용되었다. 이후 레조는 2007년까지 내수 17만 8,141대, 수출 10만 724대 총 28만 638대를 판매하고 단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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