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하다 보면 여러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아무리 방어운전 안전운전을 잘 하더라도 다른 차량이 멀쩡히 서있는 내 차에 다가와 접촉사고를 내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경미하더라도 접촉사고는 안 나는 것이 좋지만 당신도 언제나 사고가 날 수 있으므로 운전을 할 땐 항상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어느 날 몸에는 전혀 무리가 없을 간단한 접촉사고가 발생했다고 치자. 어라? 근데 상대 운전자가 좀 이상하다.


아뿔싸!
상대가 음주운전자라니
사고가 났으나 경미한 접촉이라 차에서 내려 상대방 차로 가보았는데 무언가 이상하다. 술 냄새가 펄펄 풍겨오는 것이다. 상대 운전자는 음주운전자였다. 하필 음주운전자라니… 상대방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음주운전자를 보니 짜증이 확 난다.

상대 운전자는 죄송하다며 음주운전인 것이 적발되면 면허가 취소될 수도 있으니 제발 합의를 보고 현장에서 둘만의 해프닝으로 마무리 지어주면 안 되겠냐고 사정을 한다. 과연 음주운전자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현장합의로 마무리 지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No!!
음주운전자는
다시는 운전을 할 수 없도록
처벌받아야 한다
먼저 원칙적으로 일반적인 교통사고는 양자 간의 합의가 가능하다. 음주운전자와의 접촉사고 역시 현장에서 정확한 합의 증거를 남기고 곧바로 합의금을 받는다던지 정확한 절차를 거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음주운전자들은 합의를 제시하면서 다음날이 되면 ‘내가 언제 술을 마셨냐’라는 식의 배 째라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경우에는 마땅한 합의 증거가 없으면 내용을 입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피해자인 본인은 상대방이 음주운전임을 증명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그렇게 되면 일반적인 접촉사고 건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음주운전은 대부분 습관적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음주운전자들이 교묘하게 형사처분을 피해 간다면 분명 또다시 음주운전을 할 것이고 추후에는 더 큰 대형사고를 낼 수도 있다. 따라서 음주운전자와의 접촉사고가 발생한다면 무조건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것이 좋다.

혹시나 그래도 합의가 하고 싶다면 정확하게 현장에서 상대방이 음주운전을 했다는 사실을 증거자료로 확보해야 하며 이는 언제 어디에서 어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가 정확하게 포함되어야 한다.


음주운전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
음주운전은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음주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되면 본인의 가족과 죄 없는 타인의 가족에게까지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주게 되는 것이다.

‘술 한잔 정도는 괜찮아’라는 위험한 생각이 당신과 타인의 수많은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 갈 수 있다. 음주운전은 어떤 이유에서라도 정당화될 수 없으니 절대 하지 말도록 하자. 우리에게는 대리운전이 있다.


‘윤창호 법’이 제정되었지만..
더 강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음주운전자가 낸 사고로 인해 안타깝게 세상을 뜬 윤창호 씨의 이름이 들어간 윤창호 법이 작년 11월 제정되어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었다.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낸 경우 법정형을 ‘현행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서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으로 높인 것이다. 현행법은 음주 사망사고를 내더라도 고작 징역 1년이라는 가벼운 처벌만이 존재했었다.

사망 사고가 아닌 사람을 다치게 했을 때도 기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서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량을 강화했다.

하지만 이로썬 부족하다. 음주운전자는 다시 운전대를 잡을 자격이 없다. 과감하게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여 다시는 운전대를 잡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한 사람의 음주운전으로 타인의 소중한 생명을 빼앗는 것은 그에 맞는 합당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항상 술에 관대했다. 성폭력 범죄자도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시 형이 감형되며 음주운전 역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만큼의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음주운전은 단순한 도로교통법 위반이 아닌 심각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이므로 더욱더 처벌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도로 위에 음주운전자들이 버젓이 돌아다나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순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