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디자인이라 해야 할까
앞서간 디자인이라 해야 할까
역대 프랑스 자동차 디자인을 훑어봤다

시트로엥 DS로 만든 미쉐린 PLR이다. 대형 트럭 타이어 테스트를 위해 마개조 수준으로 만들어진 차다.

[오토모빌코리아=뉴스팀] 세계 내노라 하는 패션 디자인 명품 브랜드가 많은 국가 프랑스, 디자인을 논하는 국가라 하면 역시나 프랑스를 빼놓을 수 없다. 그만큼 그들의 디자인에 대한 역사와 철학은 유서 깊으며 그 어느곳에서든지 디자인에 관해선 만국 공통어로 통하는 프랑스, 자동차 디자인 쪽에서도 나름 철학이 있는 그런곳이다.

자동차쪽 에서도 파격적인 디자인을 내놓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실용주의 컨셉과 미적인 감각을 추구하는 나라답게, 과거의 프랑스는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과 메커니즘을 적용하여 오늘날에는 명차 반열에 올라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모델들도 몇몇 존재하는데, 과연 과거에는 어떤 차들이 세상밖에 나타나 사람들을 깜짝 놀래켰는지 오늘 이 시간 함께 알아보도록 해보자.

시트로엥
트락숑 아방

시트로엥 트락숑 아방, 1934년에 세상 밖으로 나와 1957년까지 생산한 자동차이자, E 세그먼트의 중형 세단이다. 더불어 세계 최초의 대량생산형 모노코크 FF를 채택한 차량으로 널리 알려진 차량으로, 1980년대에 FF 붐이 일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최소 4~50여 년은 앞서나간 기술이었던 것이었다.

그동안 FR이 대세였던 자동차의 구동 방식을 과감히 FF로 개편하여 실내공간의 여유를 이어냈고, 유려한 디자인, 그리고 당시로서 거대한 덩치를 기반으로 당시 유럽 중형 세단의 기준을 제시하는 존재가 되었다.

더욱이 전륜 독립식 서스펜션 적용은 승차감 개선에 일조하였다. 뒤이어 후륜 서스펜션은 토션바 시스템을 탑재해 우수한 주행 성능과 부드러운 승차감을 선사해 ‘도로의 여왕’이라는 별명까지 생겼을 정도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된 후에는 나치 당원들이 애용하던 세단으로도 알려졌으며, 단종 직전인 1952년에는 시트로엥의 전매특허였던 ‘하이드로-뉴매틱 유압 서스펜션’을 추가하여 판매하였다. 덧붙이자면, 미쉐린 타이어 최초이자 세계 최초의 편평비 80 타이어인 ‘파일럿’이 적용된 모델이기도 하다.

아미 6를 보니 마쯔다 캐롤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이 차는 1962년식 초기형 캐롤이다.

시트로엥
아미 6

1950년대 들어서 시트로엥의 자동차 판매 라인업은 염가형 모델인 2CV와 DS로, 가격의 격차가 컸다. 시트로엥에서는 가격의 격차와 중간급의 라인업을 절실히 필요로 했고, 유럽의 자동차 시장도 점차 단순한 염가형 모델에서 적당히 고급스럽고 실용적이며 경제적인 소형차를 원했었다.

결국 시트로엥은 시장조사를 진행하면서 ‘프로젝트 M’이라는 소형차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당시 개발의 모티브는 “전장은 4m 이상, 해치백의 형상을 가지지 않으면서 많은 인원과 큰 트렁크를 가진 차”라는 디자인을 명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아무래도 당시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은 꽤 고역을 치렀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프로젝트 M은 결국 만들어졌다. 2기통 602cc 공랭식 복서 엔진이 탑재된 소형차는, 출시 초기에는 4도어 세단만 출시되었다. 시트로엥의 2CV보다 한 급 위의 포지션을 가졌으며, 최초 판매량은 염가형 모델인 2CV와 겉모습만 달랐을 뿐 큰 차이점을 못 느꼈던 소비자들이 많아 판매량이 저조했었다.

그러나 1964년 왜건 버전인 브레이크(Break)가 추가되고 엔진의 출력도 꾸준히 개선되어 최대 출력이 32마력까지 개선되었다. 그리고 아미 라인업에서 가장 고급화 트림이었던 클럽(Club)도 추가가 되어 단종되기 2년 전인 1966년에는 18만 대를 넘게 판매하였다. 당시 디자인을 담당했던 베르토니는 여태껏 본인이 디자인했던 차량들 중 가장 좋아하는 디자인이라고 회상할 정도로, 그 모양새는 파격적이었다.

가장 기념비적인 모델
시트로엥 DS

자꾸 쓰다 보니 시트로엥 차만 쓰는 거 같다. 보통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 혹은 메커니즘을 실행한 제조사가 시트로엥이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말이다. 여하튼, 1955년 트락숑 아방의 후속으로 나온 DS는 프랑스어로 Déesse에서 따온 이름이다.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여신이란 뜻이다.

한껏 개성을 살리고 우아한 외모를 자랑하는 DS는 실험적이고 누구도 생각지 못한 기술이 잔뜩 들어간 차량인데, 특히나 세계 최초로 디스크 브레이크를 적용한 대량 양산차라는 점에서 전 세계 자동차 역사를 통틀어 기술 발전에 이바지한 모델이자 역작이다.

트락숑 아방에서 먼저 사용되었던 하이드로-뉴매틱 유압 서스펜션이 DS에도 적용되었는데, 전작 보다 훨씬 더 진보된 기능을 갖췄다. 유압을 조절하여 전륜 차체 레벨링이 가능했던 DS는 험로 주파 대응능력도 뛰어났으며, 덕분에 실크로드를 달리는듯한 승차감을 선사하는데 큰 기여를 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다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이 기술을 이용하기 위해선 차체 곳곳에 버큠탱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함정이 있다면 이 유압 버큠라인이 윈도우 업-다운 시스템 혹은 도어 잠금장치 등 여타 모든 편의 장비들이 하나의 유압 라인으로 통합되어 있어, 버큠라인 한 곳이라도 트러블이 일어난다면 모든 시스템이 죽어버리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

대형 해치백
르노 벨사티스

해치백이라 하면 자고로 컴팩트한 바디에 뒤꽁무니가 없고 움직임은 재빠른 그런 이미지가 연상된다. 음…. 고정관념이라면 고정관념이라 할 수 있겠으나, 르노에선 이 해치백이란 세그먼트를 활용해 플래그십 모델을 만들었던 이력이 존재한다.

르노의 2세대 라구나와 4세대 에스파스의 FF 플랫폼을 이용한 벨사티스는, 가솔린과 디젤 엔진을 제공하였으며, 르노차 최초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 장착되었고 심지어 안전도에서 촉각을 곤두세워 유로 NCAP 충돌 테스트에서도 5 스타를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벨사티스는 “까다롭고, 기존 관습과는 거리 두는 차별화된 고객들”을 위한 모델이라고 르노는 발표했었다. 즉, 권위적이고 중후한 매력의 대형 세단을 거부하는 고객들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더불어 프랑스가 고급차를 만들면 이런 식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시범 케이스였던 모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벨사티스는 실패했다. 당시 유럽 언론들은 벨사티스의 평을 이렇게 내렸다. “어떤 가혹한 상황에서도 조용하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고속에서 너무 잘 흔들리고, 승차감과 핸들링은 최악이다. 변속기 또한 동력 효율이 떨어져 스펙에 비해 파워가 와닿지 않는다”라며 평가하였다. 2002년부터 2009년까지 총 7년의 세월 동안 생산이 이뤄졌지만, 2005년까지는 고작 1,000대에 판매하는데 그쳤고, 특히 영국에서 극심한 판매 부진에 시달렸다고 한다.

랭킹 뉴스

실시간 급상승 뉴스 베스트 클릭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0
+1
0
+1
0
+1
1
+1
0

1 COMMENT

댓글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