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고갯길 다 쓸어먹으며 현대차 울렸던 수입차, 이제는 쌍용차만도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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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잘나갔던 미쓰비시
현대차에 기술 제공하기도
몰락한 과정 알아보니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 10기 / 사진 출처 = 네이버 남차카페 “경기lldream롤스”님

[오토모빌코리아=뉴스팀] 일본은 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먼저 자동차 산업이 시작된 나라다. 1923년 일본 정부의 지원으로 시작된 닛산과 토요타, 혼다 등은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 잔뼈 굵은 완성차 제조사로 꼽힌다. 이들처럼 오랜 기간 명성을 쌓아오며 주류로 자리 잡은 업체가 있는가 하면 잘나가다가 어느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업체도 존재한다. 바로 미쓰비시 자동차다.

1960년 경차 ‘500’을 시작으로 승용차 업계에 뛰어든 미쓰비시는 내연기관, 사륜구동 기술력에서 두각을 드러냈고 현대자동차와 PSA그룹, 심지어 볼보에까지 휘발유 직분사 엔진 기술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렇게 일본에서 닛산과 혼다를 제치고 토요타 다음가는 회사로 거듭난 미쓰비시는 그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한때 걸음마 단계의 현대차를 가르치던 회사가 어쩌다가 근황조차 알려지지 않는 지경까지 갔을까?

90년대 최고 전성기
랠리 무대 휩쓸었다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 5기 그룹 A 랠리카 / 사진 출처 = “Suparcars.com”
미쓰비시 파제로 다카르 랠리카 / 사진 출처 = “Motor 1”

1990년대는 한창 랠리 무대에서 뛰던 미쓰비시에 황금기나 다름없는 시절이었다. 우승은커녕 레이서가 살아 돌아오기만 해도 다행일 정도로 혹독한 다카르 랠리에 SUV ‘파제로’를 투입했고 무려 7연승을 포함한 12회의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1998년 그룹 A 부문에서는 랜서 에볼루션으로 출전해 스바루, 토요타와 같은 일본 팀은 물론이며 란치아, 포드 등 당대 강적들까지 제치고 제조사, 드라이버 부문 우승 타이틀을 동시 석권하기도 했다. 당시 미쓰비시는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서 랠리 챔피언 이미지로 각인되어 상당한 호황을 기록했고 파제로, 샤리오, RVR 등으로 구성된 탄탄한 RV 라인업을 기반으로 “RV의 미쓰비시”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나태해진 경영진들
현대차에 따라잡히다

미쓰비시 미국 지사 / 사진 출처 = “Wikipedia”
현대자동차 알파 엔진 / 사진 출처 = “Wikipedia”

승리에 지나치게 심취한 미쓰비시는 초심을 잃고 하락세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동일한 플랫폼으로 뱃지 엔지니어링이나 다름없는 정도의 무미건조한 모델을 여럿 만들어내는가 하면 대형 세단 데보네어 1세대 모델은 22년 동안 풀체인지가 진행되지 않아 ‘달리는 실러캔스’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얻기도 했다. 심지어 1996년 미국 일리노이주에 위치한 자회사에서는 일본인 직원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당한 미국인 여직원 300여 명이 집단 고소해 약 380억 원 규모의 역대급 화해금을 물기도 했다.

한편 미쓰비시에 기술 로열티를 지불하던 현대차는 끈질긴 연구개발 끝에 첫 독자 엔진인 ‘알파 엔진’을 개발하고 엑셀 등 양산차에 탑재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쓰비시 회장이었던 구보 도미오는 현대차가 알파 엔진을 개발하는 동안 극심한 위기를 느꼈고 지속해서 정주영 전 회장에 접근해 “핵심 인력을 해고하는 대가로 로열티를 절반으로 줄여주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이를 가볍게 무시한 현대차는 시간이 지나 2003년 미쓰비시와 기술도입 계약을 맺었고 과거와 반대로 미쓰비시에서 로열티를 지급받았다.

대규모 결함 은폐
본격적인 나락 행

2002년 미쓰비시 트럭 바퀴 이탈 사고 / 사진 출처 = MBC 뉴스 캡처
2002년 미쓰비시 트럭 바퀴 이탈 사고 / 사진 출처 = MBC 뉴스 캡처

미쓰비시가 본격적으로 나락 행에 들어선 건 2000년대 초였다. 당시 미쓰비시가 생산하던 갤랑, 파제로, 랜서, 델리카 등 승용차 16만여 대와 대형 상용차 100만여 대에서 휠 볼트가 깨져 휠이 이탈할 가능성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미쓰비시는 대규모 리콜 비용을 우려해 이를 은폐했고 결국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고 만다. 2002년 1월 주행 중이던 미쓰비시 대형 트럭의 앞바퀴가 이탈해 운전자와 보행자 등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전에도 80여 건이 넘는 유사 사고 사례가 있었지만 미쓰비시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정황이 알려지며 기업 이미지는 한순간에 추락했다. 매출이 급감한 것은 물론, 회장이 경찰에 체포되었고 회사가 도산 직전까지 갔다. 당시 일본인들은 미쓰비시의 결함 은폐에 대해 “우리 전통대로라면 책임자가 할복했어야 할 상황”이라며 여과 없는 분노를 드러내기도 했다.

2015년 르노-닛산 편입
이후 발각된 연비 조작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사과하는 미쓰비시 경영진 / 사진 출처 = “뉴스웍스”

이후 대대적인 공개 사죄와 보상, 처벌에 이어 어려운 상황에서도 꾸준히 신모델을 출시해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경영난이 장기화됐다. 결국 2012년 네덜란드 공장을 폐쇄하고 2015년 미국 일리노이주 공장도 폐쇄하는 등 해외 생산 거점을 전부 잃기에 이르렀다. 그해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합류하며 한시름 놓긴 했으나 예전의 명성은 이미 저만치 사라진 뒤였다. 판매 중인 차량의 경쟁력은 한참 뒤처졌고 신차 출시는 뜸했으며 북미에서는 현대차보다 한참 아랫급 브랜드 취급을 받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6년 연비 조작 정황이 발각되기도 했다. 경차 2종이 발각된 것이 처음이었지만 추가 조사 결과 무려 1991년부터 25년 동안 전체 차종의 연비를 불법적인 꼼수로 측정한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1조 원이 넘는 과징금을 물게 됐고 이참에 르노-닛산이 대규모 출자를 통해 과징금을 해결, 미쓰비시의 최대 주주가 되어 사실상 미쓰비시를 인수한 셈이 되었다.

망한 줄 알았는데 살아있다
유일한 살길은 최저가 경쟁

미쓰비시 아웃랜더 / 사진 출처 = “Motor 1”

이후 미쓰비시는 유럽 시장에서도 철수했으며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 위주로 판매를 이어가고 있다. 놀랍게도 미국 시장에서 아직 철수하지 않았으나 사실상 없는 브랜드 취급을 받고 있다. 외신 및 현지 커뮤니티에 따르면 ‘미쓰비시는 차를 모르고 매우 가난한 사람이 실수로 사는 차‘라는 치욕스러운 이미지를 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미쓰비시는 2022년 현재도 이렇다 할 신차 없이 노후화된 라인업 몇 가지만으로 버티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말이다. 비교적 최근인 2021년 2월에는 중형 SUV 아웃랜더 4세대 모델을 출시했으나 존재감은 미미하다. 유일한 생존 전략인 ‘그 누구보다 싼 가격‘을 위해 경쟁 차종은 다 있는 통풍시트마저 넣지 않았으니 말 다 했다. 하지만 미쓰비시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속해있는 이상 생명줄을 한동안 부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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