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보여주기식 문화
이를 상징하는 ‘카푸어’
요즘 그 기준도 높아졌다

자동차를 보고 차주의 대략적인 경제력을 판단하는 건 어느 나라를 가든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그 풍조가 유독 심한 편으로, 타고 다니는 차에 따라 그 사람의 재력과 사회적 신분이 갈린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사실 자동차를 포함한 여러 부분에서 자리 잡은 보여주기식 과소비 문화는 잊을 만하면 지적된다. 자동차와 빈곤층의 합성어인 ‘카푸어(Car poor)’는 이러한 우리나라 특유의 문화를 대변하는 단어 중 하나이자 자동차에 별 관심이 없는 이들도 대부분 아는 단어가 됐다.
없는 형편에도 수입차를 캐피털이나 할부 등으로 구입하거나 감가를 심하게 맞은 중고 수입차를 3금융권 60개월 전액 할부로 끊어 대로변이나 번화가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 과시하는 카푸어들의 모습은 스테레오타입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에 따라 일부 인기 수입차는 멀쩡히 구입해서 타는 일부 차주들마저 이미지 하락의 피해를 보는 웃지 못할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그 하한선이 더욱 높아져 진정한 카푸어로 인정받기 위해선 최소 1억 원 이상 가격이 수입차를 구매해야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소 6천만 원대 이상이 인기
억대 수입차 판매량도 증가


수입차 대중화가 본격화되었던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3천만 원 미만에 판매되는 수입차가 존재했으며 3천만~5천만 원대 수입차의 판매량이 높은 비중을 차지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수입차 판매량 최상위권을 다투는 BMW 5시리즈와 메르세데스-벤츠 E 클래스가 포함된 6천만~1억 원대 수입차가 주를 이루는 것으로 드러났다.
2억 원을 훌쩍 넘기는 수입 럭셔리, 슈퍼카 브랜드의 점유율도 불과 2년 만에 점유율이 3배가량 뛰었다. 수입차 업계는 중국발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해외 여행길이 막힌 부유층이 억대 수입차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더욱 고급스러운 수입차를 원하는 카푸어들의 편승 효과도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5천만 원대는 인기 없어
다양한 금융상품도 한몫


한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5천만 원 미만 수입차의 경우 비슷한 가격대의 국산차보다 선택의 폭이 좁고 편의 사양이 부족해 인기가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라며 “제네시스의 인지도가 높아져 메르세데스-벤츠, BMW와 직접적인 경쟁이 가능하게 된 것도 고가 수입차 판매량 상승에 영향을 줬다”라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금리가 크게 오르긴 했지만 초기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캐피털 등 금융상품이 다양해진 것도 고가 수입차 증가에 적잖은 영향을 줬다”라며 “그 부작용인 카푸어도 눈에 띄게 늘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작년 말부터 경기가 악화하기 시작해 올해는 1억 미만 수입차 판매량이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거나 “불황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부유층으로 인해 1억 원 이상 럭셔리카, 슈퍼카 시장은 성장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작년 판매량 1위 ‘E250’
BMW 520은 3위 차지


한편 5천만~7천만 원대 수입차의 점유율은 지난 2015년부터 1위를 유지하고 있다. 2015년 31.14%였던 점유율이 2021년에는 32.94%, 작년에는 35.36%까지 치솟았다. 역시나 이 가격대의 주류는 벤츠와 BMW였다. 시작 가격 6,960만 원인 벤츠 E250은 작년 1만 2,172대가 팔려 수입차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6,610만 원에서 시작하는 BMW 520은 1만 301대가 판매돼 3위, 6,340만 원짜리 BMW X3 2.0은 4,911대를 기록해 4위에 올랐다. 최상위 10개 차종 중 유일하게 5천만 원대(5,390만 원)인 BMW 320은 4,221대가 판매되어 8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