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화하는 전기차 시장 경쟁
주행 가능 거리에 목숨 걸었다
실상은 과도한 스펙이라고?

BMW iX3
BMW iX3

세계에서 세 번째로 넓은 국토를 가진 나라 미국의 면적은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 면적의 44.5배에 달한다. 여기에 인구 밀도가 낮으니 한국보다 생활 반경이 넓을 수밖에 없다. 인프라가 밀집된 대도심이 아닌 이상 가까운 식료품점을 들를 때도 차가 필수품인 미국에서는 전기차 주행 가능 거리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요즘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는 300마일(약 483km) 이상의 주행 가능 거리가 필수 요건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완성차 제조사들은 신형 전기차를 발표하며 1회 충전으로 483km 이상 달릴 수 있다는 멘트를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그런데 최근 이 정도 수준의 스펙은 일상적인 주행에서 필요 없으며 오히려 전기차 업계의 과도한 주행 가능 거리 경쟁이 가격 인상을 부추긴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미국 일 평균 주행거리 56km
큰 배터리가 가격 인상 부추겨

닛산 리프 / 사진 출처 =
닛산 리프 / 사진 출처 = “Wikipedia”
사진 출처 =
사진 출처 = “뉴스1”

미국 델라웨어 주립대는 최근 애틀랜타 지역에서 운행되는 차량 333대에 GPS를 장착하고 운전자들의 차량 사용 패턴을 분석했다. 그 결과 미국 운전자는 하루 평균 35마일(약 56km) 이내 거리를 운행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직 부족한 현재의 전기차 충전 인프라 상황에도 짧은 시간 충전으로 확보할 수 있는 주행거리이며, 37.9%의 운전자는 1회 충전 주행 가능 거리가 341km인 닛산 리프 정도로도 일상 주행에 지장이 없다는 결론이다.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는 당연히 일 평균 주행거리도 미국보다 짧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승용차 일 평균 주행거리는 33.9km, 사업용 승용차 주행거리는 71.5km에 불과하다. 하지만 요즘 출시되는 전기차 대다수가 주행 가능 거리 확보를 위해 70~80kWh 수준의 대용량 배터리를 얹어 불필요한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는 업계 지적이 이어진다.

아이오닉 5 스탠더드 레인지
롱 레인지보다 천만 원 저렴

현대 아이오닉 5 롱 레인지 AWD
현대 아이오닉 5 롱 레인지 AWD
생산 중인 폭스바겐 ID.4 배터리팩 / 사진 출처 =
생산 중인 폭스바겐 ID.4 배터리팩 / 사진 출처 = “electrive.com”

현대 아이오닉 5 롱 레인지 사양의 경우 77.4kWh 배터리팩을 탑재해 최대 458km 주행할 수 있다. 서울시 평균 주행 거리로 단순 계산해 보면 한 번 충전하고 10일 동안 재충전이 필요 없는 수준이다. 반면 58kWh 배터리팩을 얹은 아이오닉 5 스탠더드 레인지 사양은 1회 충전 주행 가능 거리가 336km인 대신 롱 레인지에 비해 천만 원 이상 저렴하다.

통상적으로 전기차 원가에서 배터리팩이 차지하는 비중이 35%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배터리 용량을 낮춘다면 전기차 가격을 확실히 낮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리튬 등의 희귀 광물을 아끼고 채굴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량도 줄일 수 있다. 자동차 중량이 높을수록 운동 에너지가 커져 교통사고 시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 만큼 작은 배터리팩을 얹은 전기차가 교통안전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진정 필요한 건 보급형 전기차
소비자와 업계 인식 개선 필요

테슬라 모델 2 테스트카 / 사진 출처 =
테슬라 모델 2 테스트카 / 사진 출처 = “Reddit”
쌍용 토레스 EVX 테스트카 / 사진 출처 =
쌍용 토레스 EVX 테스트카 / 사진 출처 = “motor.es”

물론 현재 상황을 보면 완성차 업계가 전기차 주행 가능 거리 확보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은 1회 충전 주행 가능 거리를 전기차 상품성의 척도로 판단하며 아직 부족한 충전 인프라로 인한 불안감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거리 운행이 일상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소비자들에게 필요한 건 지금보다 배터리 용량이 낮은 보급형 전기차다.

그럼에도 전기차 제조사는 보급형 모델보다 익성이 좋은 중형급 이상 모델을 우선으로 개발하며, 대용량 배터리를 얹어 필요 이상으로 긴 주행거리를 우수한 기술력의 상징으로 내세운다. 업계 관계자들은 배터리 용량을 현행 전기차의 절반 수준으로 줄인다면 기본 가격을 3천만 원대로 낮출 수 있다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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