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시간이 들더라도 부품 조합을 알아보면서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최적의 가격 타이밍을 기다린다. 누가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했던가. 컴퓨터는 기술 발전이 빠르기 때문에 넋 놓고 기다리다가는 망부석 된다.
자동차를 살 때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 것 같다. 모델을 정하고 나서도 계약서에 도장찍기가 망설여지는 이유 중 하나는 페이스리프트 등의 모델변경 소식이다. 아빠가 좋은지 엄마가 좋은지 대답하기 어렵듯이 페이스리프트와 풀체인지 중에 무엇이 더 좋다고 선뜻 결정하기 어렵다. 장단점이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이고, 사람마다 자동차가 필요한 이유와 경제적 사정이 각기 다른 까닭이다.
1. 풀체인지 찬성파
바꿀 거면 다 바꿔야지
풀체인지의 주기는 제조사마다 모델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5~7년 정도 걸린다. 다소 지나친 예외도 있는데 G 바겐이라고도 불리는 벤츠 G 클래스는 20년 넘게 페이스리프트만으로 버텼다. 풀체인지가 이루어지게 되면 외관, 내부 등의 디자인 뿐만 아니라 동력 장치, 엔진, 차체 등 기계적인 부분도 바뀐다. 풀체인지를 통해서 세대 교체가 이루어진다. 현대 쏘나타로 예를 들면 EF쏘나타->NF쏘나타->YF쏘나타->LF쏘나타처럼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도 오랜 시간 함께하다 보면 마음이 처음과는 다르다. 나쁜 의미로든 좋은 의미로든. 자동차도 눈에 익숙해지면 전보다 안 예뻐 보이는 것 같고 다른 브랜드에서 모델변경 소식이 들리면 괜시리 눈이 간다. 풀체인지 모델은 브랜드의 명맥을 유지하고 고객의 충성도에 부응해야 하는 중요한 이벤트다.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최적의 기술이 들어가며 안전성이 이전 세대보다 개선된다. 디자인 역시 트렌드가 반영되기 때문에, 구매를 앞둔 사람이라면 풀체인지 모델을 마다하기 어렵다.
2. 풀체인지 반대파
축하드립니다
베타 테스터가 되셨습니다
갤럭시 노트7은 정말 예뻤다. 초기 판매량이 그 인기를 증명해줬지만, 출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배터리가 폭발하는 바람에 전에 없던 리콜과 보상을 해야만 했다. 애플의 아이폰6+는 프레임이 뒤틀리는 문제가 있었다. 신제품은 언제나 매력 넘치지만 실사용 때 어떤 위험이 숨어 있는지 제조사도 알 길이 없다.
브랜드와 제품에 관한 호감 때문에 누구보다 빠른 구매를 좋아하는 소비자는, 제조사 입장에서 놓치면 안 되는 고객이다. 모든 고객이 소중하지만 충성도가 높은 고객군은 제조사에게 최소한의 매출을 보장해줄 뿐더러, 제품의 만족도가 좋으면 자식 자랑하는 부모처럼 주위에 그 제품의 장점을 널리 알리고 다닌다. 에어컨이 각도가 안 맞아서 안 터졌다거나, 트렁크에 물은 새지만 주행에는 문제 없다는 식의 초기 대응은 어렵게 쌓은 브랜드 이미지를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
1. 페이스리프트 찬성파
급격한 변화보다
온건한 변화가 낫다
과거에는 페이스리프트가 자동차의 앞부분과 뒷부분의 디자인 위주로 이루어졌지만 수입차가 들어오면서 소비자가 선택의 폭이 넓어져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성능을 일부 변경하는 경우가 생겼다. 자동차에 관한 정보가 소셜 미디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활발하게 공유되고 전문가 못지 않은 일반인의 정확한 분석이 대중들의 수준을 높이면서 제조사가 페이스리프트에도 부담을 느끼게 됐다. 페이스리프트가 자동차의 구조적인 부분도 일부 변경하는 마이너체인지와의 경계가 모호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빠른 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이 페이스리프트가 가진 장점이다. 페이스리프트는 2~3년의 주기를 가지는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큰 변경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계적인 부분에 문제가 있다면 엔진이나 변속기를 바꾸기도 하지만 풀체인지 모델보다는 위험성이 적다. 모의고사 이후에 오답 위주로 공부를 하고 다시 시험을 보면 성적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신차 출시 후의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 문제점만 보완한 페이스리프트는 사람에 따라서 풀체인지 모델보다 매력적이다.
2. 페이스리프트 반대파
바꿀 거면
다 바꾸는 게 낫다니까?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안전성에 관해 큰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충돌 테스트에 많은 비용이 들기도 하지만 페이스리프트에서는 차체를 만드는 금형에 변화를 주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금형에 변화가 없다면 기존 안전성 검사와 결과가 다르지 않을 것이므로 옵션 추가 등으로 소비자 스스로 더 나은 안전을 챙겨야 한다. 앞서 엔진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고 했지만,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개선 대상이 아닐 거다. 상대적으로 구형인 엔진을 다음 세대가 등장하기 전까지 사용될 거라는 의미. 신형 엔진이 늘 좋은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신경 쓰일 문제다.
가장 큰 이벤트는 아무래도 모델 풀체인지다. 자동차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언론에서 크게 다루다 보니 관련 정보를 접하기 쉽고, 제조사 입장에서도 성공적인 세대 교체와 새로운 고객의 유입을 위해서도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기분 좋게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사서 잘 타고 다니다가, 슬슬 들려오는 신차 소식에 괜히 자동차 뉴스란을 기웃거리게 되는 사람 마음이 간사해질 수밖에 없다. 가랑비에 젖은 옷을 갈아 입듯이 마음의 동요를 잡지 못하고 풀체인지 모델에 계속 시선을 두다 보면 위험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자동차를 오래 타다가 자식에게 물려주기도 했지만, 요새는 주기가 무척 짧아졌다. 한 기사에 따르면 5년 이내에 자동차를 교체하는 비율은 42.8%, 5년 이상 7년 미만이 21.9%, 7년 이상 9년 미만이 11.4%였다.
소비자의 소비 패턴과 바뀌고 정보의 확산 속도가 빨라지면서 자동차의 출시 주기 역시 변해야 했기 때문. 자동차 구매를 예정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페이스리프트나 풀체인지 시기를 가늠하게 된다. 큰돈을 들이는데 굳이 구형을 사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말이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이것과 저것을 따지게 되는데 하물며 자동차는 얼마나 생각할 게 많은 물건인가. 소형차를 살까 하다가 돈 조금 보태서 더 안전한 준중형에 눈이 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고차 사이트를 보다가 차라리 이 돈으로 중고 수입차를 사볼까 하는 견물생심이 꽃 핀다. 어렵게 모델을 정했는데 더 기다렸다가 풀체인지 모델을 살지, 지금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사야하는지 또 모르겠다. 뫼비우스의 고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에게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알려주고 싶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번역하면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죽음)이 생길 줄 알았지”. 자동차는 언젠가 수명이 다하는 소모품이다. 지금 필요하면 지금 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