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대중화 앞장선 미국
수많은 제조사가 존재했다
사라진 브랜드 3곳 살펴보니

최초의 자동차가 발명된 나라는 독일이지만 자동차의 대중화가 가장 먼저 시작된 나라는 미국이다. 1908년 헨리 포드가 설립한 포드에서 본격적인 양산차 ‘모델 T’를 출시함으로써 미국 전역에 자동차가 보급되기 시작했고 오늘날 미국은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을 가진 나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당시 우후죽순 생겨난 미국의 수많은 자동차 회사들은 한 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다른 회사에 흡수되거나 파산했다. 특히 1970~1980년대에 터진 두 번의 오일 쇼크로 인해 승용차 시장에서 힘을 못 쓰던 미국 완성차 업계는 가성비를 앞세운 일본차와 우수한 감성 품질로 어필하는 유럽계 브랜드에게 자리를 빼앗기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데, 이 중 세 곳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고급 브랜드 ‘올즈모빌’
당시 상당한 인기 누려


자동차 마니아들이라면 ‘올즈모빌(Oldsmobile)’이라는 이름을 한 번쯤 들어봤을지도 모른다. 1897년 설립되어 미국 자동차 산업 역사상 최장기간 동안 살아남았던 올즈모빌은 창립 초기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완성차 제조사 중 하나였다. 1908년에는 제너럴모터스(GM)에 인수되었는데 당시의 높은 브랜드 가치 덕에 GM의 신기술들이 가장 먼저 적용되기도 했다.
1950년대에는 미국을 대표하는 모터스포츠 종목 ‘나스카(NACSAR)’에서 훌륭한 성적을 연이어 거둬 ‘고성능 브랜드’ 이미지도 구축했다. 당시 올즈모빌은 뷰익이나 캐딜락 등 고급 브랜드와 견줬을 때 가격은 저렴해도 더욱 세련된 디자인과 풍부한 편의사양을 갖춰 젊은 중산층으로부터 인기가 많았다. 이 인기는 1970년대 중후반까지도 유지되어 미국 중산층이 선호하는 브랜드 1순위로 자리 잡았다.
최악의 마케팅 흑역사
지금도 밈으로 쓰인다


하지만 두 번의 오일쇼크를 거치며 전성기도 막을 내렸다. 우수한 내구성과 연료 효율,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토요타, 혼다 등 일본 자동차 브랜드가 미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며 입지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GM이 수익성 개선을 목적으로 무분별한 뱃지 엔지니어링을 남발한 나머지 결국 브랜드 정체성과 상품성마저 악화되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신규 고객층을 유치하기 위해 던진 무리수가 올즈모빌을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트렸다.
“이건 아버지들이나 타던 올즈모빌이 아니다(This is not your father’s Oldsmobile)”로 유명한 이 마케팅 멘트는 의도와 달리 젊은 소비층을 끌어들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충성 고객들마저 떨궈버리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이후 올즈모빌은 판매 부진에 계속 시달리다가 2004년에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이때의 광고 멘트는 자동차 역사상 최악의 마케팅 중 하나로 두고두고 회자됐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현재까지도 각종 밈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젊은 브랜드 폰티악
‘대우 르망’과 인연도


1926년 GM이 자체 설립한 브랜드 ‘폰티악’은 당시 GM 산하의 브랜드 ‘오클랜드(Oakland)’보다 상위의 고급 브랜드로 포지셔닝됐다. 초기부터 스포티한 주행 감각과 디자인, 고성능을 앞세워 젊은 소비층으로부터 나름 괜찮은 인기를 누렸다. 특유의 2슬롯 라디에이터 그릴 디자인은 ‘가성비 BMW‘ 혹은 ‘서민들의 BMW’라는 긍정적인 별명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폰티악은 그랑프리(Grand Prix), GTO 등 머슬카부터 카마로의 형제 모델이자 전격 Z 작전의 ‘키트’로 유명세를 얻은 파이어버드(Firebird) 등 여러 명차를 선보이며 1970년대까지 전성기를 이어갔다. 당시 GM 산하 브랜드 오펠(Opel)이 개발한 대우자동차(현 한국GM) 르망(Le Mans)의 수출형 모델에 폰티악 로고가 달리기도 했다.
무지성 경영의 희생양
최단기간 생존한 ‘새턴’


하지만 폰티악의 전성기도 1980년대 들어 끝나고 말았다. 가성비 좋은 일본 브랜드가 미국 승용차 시장을 잠식하는 동안 올즈모빌과 함께 GM 무지성 뱃지 엔지니어링의 희생양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실적이 개선되기는커녕 브랜드 이미지가 무너져갔고 1980년대의 연간 판매량은 1960년대의 70% 수준으로 폭락하기에 이른다. 올즈모빌처럼 픽업트럭, SUV 라인업이 아예 없었던 폰티악은 1990년대, 2000년대에도 부진이 장기화됐고 결국 GM은 2010년에 폰티악 브랜드를 정리했다.
올즈모빌과 폰티악은 나름 1세기 가까이 살아남은 데 비해 ‘새턴’은 최단기간 존재한 자동차 브랜드 중 하나로 꼽힌다. 1985년 GM은 미국에서 잘나가는 일본 및 독일 브랜드와 겨루기 위해 새턴을 독립 자회사로 출범시켰다. 이들보다 더 저렴한 가격과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으로 젊은 소비층을 끌어들이려고 했던 새턴은 폰티악의 전성기 시절과 비슷한 포지셔닝으로 주목받았다.
초기에는 잘 나갔지만
발전 없어 도태됐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브랜드 ‘지오(Geo)’와 같이 흥정 없고 혼란 없는(No Haggle, No Hassle) 가격 정책, 출범 초기에 시행했던 우수한 서비스 정책 등으로 젊은 고객들을 상당수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새턴은 일본 자동차에 점차 대항하는 브랜드로 입지를 다져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 S 시리즈를 제외한 신차 출시가 없어 소비자들의 관심을 점차 잃기 시작했고 GM 산하의 나머지 브랜드들은 새턴에 대한 투자에 반발하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0년대 초반 토요타가 가성비 전략으로 투입한 브랜드 ‘사이언(SCION)’의 등장으로 새턴의 존재감은 갈수록 추락했다. GM은 1980년대 올즈모빌과 폰티악에 했던 뱃지 엔지니어링을 새턴에 반복했고 결국 2000년대 후반에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한 새턴은 2010년 폰티악과 함께 역사의 일부가 되고 말았다.